퍼스트 펭귄이 되자
수십 마리의 펭귄이 빙판 위에 모여 바다를 바라만 보고 있다. 바닷속엔 먹이가 있지만, 동시에 생명을 위협하는 바다표범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떨치고 뛰어들어야만 먹이를 구할 수 있는데도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성과 배고픔이라는 본능 사이에서 펭귄들은 천천히 바다를 향해 걸어가지만, 결국 마지막 몇 미터 앞에서 발길이 멈춘다. 아마 펭귄들 대부분이 '내가 먼저 뛰어들었다가 바다표범이 물속에 있으면 어쩌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긴장감이 고조될 때, 누군가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이른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이다.
먼저 뛰어든 펭귄이 살아남아 무사히 헤엄치기 시작하면, 나머지도 뒤따라 바다로 뛰어든다. 일상에서 무언가 도전할 기회가 생기면, 사람들은 펭귄처럼 망설이게 된다. 새로운 프로젝트, 이직, 창업, 글쓰기, 결혼, 심지어 누군가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일조차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도전하겠다고 말한다. 더 자본을 모은 후, 더 배운 다음에, 더 나를 믿을 수 있을 때를 찾으며 완벽한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조금 더 배운다고 해도 진짜 필요한 건 실전에서 부딪혀보는 경험이고,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한다고 해도 실제론 그 시간마저 다른 불안과 걱정으로 채워지기 십상이다. 결과적으로 더 준비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진짜 삶을 마주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삶에서 말하는 완벽한 시기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이라는 말 자체가 환상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유니콘의 모습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유니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변수는 끊임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당신이 원하는 완벽한 조건은 절대 오지 않는다. 퍼스트 펭귄이 되자고 말하는 건 무모하게 모든 일에 돌진하자는 뜻이 아니다. 기회를 봤을 때 망설임 없이 한번 해보자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내리길 바라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오해는 풀어야 한다. '먼저'가 항상 '유리'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무조건 먼저 행동'이 아니라 '먼저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럼, 먼저 시작한다고 유리하지도 않은데 왜 먼저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할까? 직접 뛰어들어 봐야 진짜 위험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배움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성장이 빠른지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더욱이 인간은 펭귄과 조건이 다르다. 새로운 도전에선 얼마든지 스스로 '안전마진'을 설계할 수 있다. 작게 들어가고, 빨리 배우며, 유연하게 바꾸는 것이다. 안전마진이 확실히 세워져 있다면 새로운 시도에서 얻는 실패는 대부분 치명적이지 않다. 오히려 도전하지 않은 채 스스로 안 되는 이유만 반복하는 것, 그게 삶을 점점 더 빈곤하게 만들 뿐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당신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는 직접 시도해 보기 전까지 당신 역시 알 수 없다.
완벽이라는 허상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 혹은 "내가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 새로운 도전을 마주할 때 가장 많이 선택하는 말이다. 어조는 다를지 몰라도 내면의 방어본능에서 솟아오르는 말의 의미는 대부분 같다. 본능적인 자기방어적 언어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의 환경과 나이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 같다. 이 생각들 대부분은 당신이 만들어낸 규정일 뿐이다. 당연히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거울 속 주름이나 늘어난 흰머리는 분명 현실이다. 그렇지만 마음은 외형과 달리 늙지 않는다. 육체의 변화가 곧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더욱이 그 사실이 곧 배움의 능력 저하나 도전의 종료를 의미하진 않는다. 당신이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장이 멈출 뿐이다. 그래서 많은 도전에서 숨어 있는 진짜 장벽은 환경도, 나이도 아닌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한계다. "나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새로운 걸 시작하기엔 늦었다", "나는 재능이 없어서 안 될 거야", "나는 이미 실패를 경험했으니까, 또 실패할 거야"라는 생각들이 바로 당신이 만들어낸 족쇄다.
맥아더 장군은 "나이가 60이다 70이다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이 늙었다 젊었다 할 수 없으며, 늙고 젊은 건 그 사람의 신념이 늙었느냐 젊었느냐 하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모두 아는 유명한 소설과 글의 초고는 엉망진창에서 출발한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완벽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은 없다. 초고는 대개 불완전하고, 때론 민망할 정도로 서툴다. 다만 초고가 없으면 퇴고도 없다. 이 단계를 통과하지 않고 '완성'으로 순간 이동하는 법은 없다. 세계적인 거장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모든 첫 번째 초고는 쓰레기다."라고 했으며, 자신의 작품 중 하나인 《노인과 바다》는 200번을 넘게 퇴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좋은 작품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끊임없는 수정과 개선을 통해 조금씩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인생을 당신만의 거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럼,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초고를 쓰고, 오탈자를 고치고, 내용의 문맥을 다듬고 수정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첫 번째 시도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툰 결과에서 시작해서 점점 만족스러운 결과로 나아가는 여정이며,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성장이다.
《성경》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바람만 살피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하며, 구름만 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전도서 11:4)" 상황만 따지다가 조건이 완벽해지길 기다리다 보면, 아무것도 심지 못한 채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다.
반대로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잠언 24:16)"라는 구절도 있다. 인생에서 넘어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는 게 더 중요하다.
0과 1의 차이
숫자 0과 1의 차이는 단지 1일뿐이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0에는 어떤 거대한 수를 곱해도 항상 0이지만, 1에 같은 수를 곱하면 그만큼의 결과가 생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0인가, 1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 당신은 0이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시작했다면, 그 순간 1이 된다. 일단 1이 되는 순간, 시간, 기회, 사람, 운이 차례로 곱해진다. 시작은 작아도 곱셈은 이미 시작됐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1%의 가능성도 같은 맥락이다. 말 그대로만 보면 100번 중 한 번쯤 성공한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말의 궁극적인 의미는 같은 시도를 100번 반복하는 게 아니라 매번 배우고 개선하며 100번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1%는 다음번엔 3%가 되고, 그다음엔 5%가 되며, 점점 가능성과 확신이 커진 게 된다. 그래서 옛말에도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닐까? 시작한다는 건 단순히 절반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0을 1로 바꾸는 무한한 가능성의 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20년 전이었다. 그다음으로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 시작하지 못했다고 해서 후회할 필요는 없다.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된다. 성공은 결코 하루아침에 찾아오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는 오늘의 작은 노력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쌓이고 쌓여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다.
만약 당신이 매일 1%씩 나아지는 길을 선택한다면, 1년 뒤엔 지금보다 약 38배 성장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반대로 매일 1%씩 퇴보하는 길을 걷는다면, 1년 후의 결과는 0에 가까운 값을 얻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차이가 시간이라는 매개를 통과해 거대한 격차가 되어 돌아온다.
노년의 피카소는 카페에 앉아 커피 얼룩이 묻은 냅킨에 그림을 끄적이고 있었다. 낙서를 마친 피카소가 냅킨을 구겨서 버리려 하자, 옆자리에서 감탄하며 지켜보던 여인이 사례는 하겠다며 그 냅킨을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다.
피카소가 대답했다. "물론이죠. 2만 달러입니다."
여인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뭐라고요? 그리는 데 2분밖에 안 걸렸으면서."
피카소는 다시 여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요.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60년이 걸렸습니다."
처음부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삶에서 마주하는 타인의 모든 성공과 성취는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그리고 끝없는 개선의 결과물이다.
자동차의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 역시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지금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의 첫 번째 회사인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Detroit Automobile Company)'는 1899년에 설립되었지만, 생산한 자동차의 품질이 기대에 못 미쳤고, 가격도 너무 비쌌기에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는 곧바로 두 번째 회사인 '헨리 포드 컴퍼니(Henry Ford Company)'를 설립했는데 투자자들과의 의견 충돌로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는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라고 말하며 새로운 기술과 생산 방식을 연구했다. 그 결과, 그는 '포드 자동차(Ford Motor Company)'를 설립하고 혁신적인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하여 대량 생산 방식을 성공시키며 자동차 대중화의 주역이 됐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걸음마의 시간을 거친다. 태어나자마자 뛰는 아기는 없다.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아기는 "나는 걷기 재능이 없나 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넘어짐이 배움의 일부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오로지 '걷겠다'라는 목표 하나로 다시 시도할 뿐이다. 넘어짐은 포기가 아니라 다음 발을 위한 준비 동작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우리는 왜 이 당연한 진리를 잊어버릴까? 이제 다시 그 감각을 회복하자.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점들을 연결하라."라고 말하며 자신의 인생을 바꾼 하나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대학을 자퇴하고, 서체와 글씨체를 다루는 캘리그래피 강의를 듣게 됐는데 당시엔 그저 아름다운 글씨체에 흥미를 느꼈을 뿐, 이 배움이 앞으로의 인생에 어떤 쓸모가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그저 호기심이라는 '점'하나를 찍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10년 후,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자신이 들었던 강의의 경험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다양한 글꼴과 정교한 자간을 구현하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을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뒤돌아보았을 때만 연결됩니다. 그래서 언젠가 점들이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인생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과 도전들은 당시엔 의미를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경험들이 나중에 되돌아보면 모두 연결되어 의미 있는 하나의 그림을 만든다. 지금까지 망설이고 있는 그 일을 바로 지금 시작해 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툴러도 괜찮다. 시작이 반이고, 0에서 1로 가는 그 한 걸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대단한 성취와 결과가 아닌 '시작'이라는 점을 찍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의 마음은 젊고, 가능성은 무한하다. 당신이 오랜 시간 동안 되고 싶었던 그 어떤 존재가 되기에는, 지금도 절대 늦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헨리 포드의 말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든 할 수 없다고 믿든 믿는 대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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