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 비용의 함정
사회는 "포기하지 말라", "끝까지 도전하라"는 메시지로 언제나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메시지들이 때로는 용기를 주고 동기를 부여하지만, 모든 상황에 맞는 만능 해답은 아니다. 때로는 포기하는 것이 더 큰 용기가 필요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오랫동안 시험을 준비하는 장수생들은 첫해에 떨어졌을 땐 "운이 나빴다"라고 생각하고 두 번째 해엔 "좀 더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믿는다. 세 번째, 네 번째가 되어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기 시작하지만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라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매몰 비용의 오류'이다.
경제학에서 '매몰 비용(Sunk Cost)'이란 이미 지출되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의미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을 지금까지 공부한 게 아까워서 계속 유지하는 대학생, 실패가 예견되는 창업 아이템을 포기하지 못하는 창업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매몰 비용의 오류'는 이미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을 계속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도박에서 잃은 돈을 만회하려고 더 큰 돈을 거는 것과 같은 심리다.
이를 뒷받침하는 게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1979년에 발표한 프로스펙트 이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손실 회피'인데 이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동일한 크기의 '이익'을 얻는 것보다 '손실'을 당하는 걸 심리적으로 약 2~3배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고 한다. 예를 들어, 10만 원을 잃는 고통이 10만 원을 얻는 기쁨보다 2~3배 이상 크게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손실 회피 성향은 '소유효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이미 가진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고, 이에 따라 손실에 대한 민감성은 증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손실을 회피하려는 본능 때문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즉, 이미 투입한 시간과 노력을 손실로 인식하여 이를 회수하려는 심리가 매몰 비용의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포기를 실패의 동의어로 여기게 됐을까? 언제부터 끝까지 버티는 것만이 미덕이고, 중간에 그만두는 건 나약함의 표시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인간의 뇌는 일관성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한 번 내린 결정이나 선택한 방향을 바꾸는 걸 뇌는 위험하고 불편한 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자신에게 잘못된 선택이나 과분한 도전을 포기하는 건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을 고려한 합리적 선택이다. 현재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대신, 다른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매몰 비용의 함정에서 벗어나 더 나은 결과를 얻은 대표적인 예가 미국 비디오 렌탈 업계의 넷플릭스(Netflix)와 블록버스터(Blockbuster)의 두 기업에 관한 이야기다. 신생 벤처 넷플릭스는 시장의 거대한 공룡인 블록버스터가 있었음에도 오프라인 방식의 블록버스터와 차별화하여 DVD 우편 배송 사업을 통해 새롭게 성장했다. 그렇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넷플릭스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아야 했고, 기존의 DVD 우편 대여 사업에 막대한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과감히 정리하여 지금의 스트리밍 서비스(OTT)로 전환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블록버스터는 기존 오프라인 매장 사업에 투자한 막대한 비용이 아까워 변화에 늦게 대응하다가 2010년 파산을 선언한 게 매몰 비용의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이다.
중요한 건 과거에 투입한 비용이 아니라 앞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다. 과거는 변경할 수 없지만 미래는 선택할 수 있다.
가능성의 중독
매몰 비용의 함정과 더불어 빠지기 쉬운 오류가 바로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중독되는 것이다.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 때문에 겉보기엔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사람을 서서히 좀먹는 가장 교묘한 중독이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아", "조금만 더 준비하면 돼", "나에게 시간과 운만 조금만 더 따라주면 돼" 등 가정법의 늪에 빠진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가능성이라는 단어는 실패가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에게 마치 신기루를 좇는 사막의 여행자처럼, 늘 조금만 더 가면 오아시스가 나올 것이라고 믿으며 같은 자리를 맴돌게 한다.
이 중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실패는 바로 어설픈 재능이다. 완전히 재능이 없다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지만, 어설프게 있는 재능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건 도박 중독의 심리와 유사하다. 도박 중독자들이 "다음엔 딸 수 있다"라고 믿는 인지적 오류와 같은 메커니즘이다.
특히 명확한 합격선이 없는 예술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연기에 어느 정도 재능이 있지만 뛰어나지는 않은 사람을 생각해 보자.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배우가 되려고 적극적으로 도전하기보다는, 배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안주하려 한다. 진짜 평가받아서 '안 된다.'라는 결론이 나오는 게 두려워서 아직 '내가 정말 열심히만 하면 될 수 있어.'라는 가능성의 환상을 유지한 채 안전한 상상 속에서 살아간다. 이들은 마치 영원히 준비운동만 하는 운동선수와 같다. 경기에는 나서지 않으면서 연습장에서만 폼을 잡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자기 성적은 낮지만, 좋은 직업을 선택하겠다며 수능에 중독된 사람, 몇 년째 합격선 근처도 못 갔으면서 공무원 시험이나 고시 또는 자격증 시험에 매달리는 사람, 조금만 더 배우면 될 것 같다며 끝없이 강의만 듣는 사람, 창업 아이템만 계속 바꿔가며 "이번엔 정말 될 것 같아"라고 말하는 사람들 모두 '가능성 있는 나'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깊이 빠져 있다. 자신이 확신하는 정보만 맹신하며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피드백은 철저히 무시한다. "나는 특별해", "때만 맞으면 돼", "운이 안 따라줘서 그래"라는 식으로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걸 거부한다.
흥미로운 건 이들에게서 '임포스터 신드롬(Impostor Syndrome)'의 역설적 형태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임포스터 신드롬은 성공한 사람이 "나는 사기꾼이야"라고 느끼는 것이지만, 가능성 중독자들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이건 현실 도피의 한 형태로, 실제 능력을 검증받는 걸 두려워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에선 이를 '자기핸디캡핑(Self-Handicapping)'이라고 부르며 "나는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으니까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심리적 안전장치를 미리 만들어두는 행동이다. 이들은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기보다는 실패했을 때의 변명거리를 미리 준비한다.
가능성 중독의 본질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기 싫음에 있다. 도전해서 실패하면 스스로 이 분야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도전하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선 본인도 자기 실력이 프로가 되기엔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건 현대 사회의 '무한 가능성'' 신화다. "꿈은 이루어진다", "하면 된다", "포기하지 마라" 같은 메시지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걸 이룰 수는 없고, 재능과 노력, 운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메시지들은 실패한 사람들에게 "네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라는 자책감을 심어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 "아직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자기기만에 빠진다.
더욱이 가능성 중독의 가장 큰 피해는 삶의 소중한 시간을 의미 없는 준비에 쏟아붓는 동안 내 삶을 시나브로 망가뜨리며 성장할 기회들을 놓치게 된다. 그러면서 진짜 재능을 발휘할 다른 분야에서의 가능성과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종국에는 가능성 중독자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본인은 여전히 링 위에 남아 치열하게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발버둥 치지만, 같은 시기에 시작했던 동료들은 이미 한 단계씩 올라가 버렸고, 결국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자신은 과거의 자신과 홀로 글러브를 맞대고 있을 뿐이다. 환상 속에 갇힌 그들에겐 진심 어린 조언도, 새로운 기회도 모두 사라져 버린다.
깨어나야 할 시간
가능성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 상태가 심리적으로 너무나 편안하기 때문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고, 대충해서 실패하면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라는 핑계를 댈 수 있어 자존심도 덜 상처가 된다. 그러나 이런 안전한 실패는 성장의 기회를 완전히 박탈한다. 한 분야에서 1등이 되는 건 재능의 영역이지만, 그 분야에서 직업을 가지고 꾸준히 일하며 실력을 키워가는 건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현실적 성취조차 놓치게 된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이 현대 사회는 성공에 대한 압력이 강하기에 실패를 더 두려워하게 만든다.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 뒤처지면 안 된다는 무게감이 삶을 짓누르고, 소셜미디어 뒷면에 있는 타인의 화려한 성공만 바라보며 끝없이 비교의 늪에 빠진다. 그러다 보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 가능성의 안전지대로 도피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가능성의 중독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의 현재 실력과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건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다. 그리고 작은 도전부터 시작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한 번에 큰 변화를 시도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작은 성공을 쌓아가면서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
특히 도전하면서 마주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배움의 기회다. 특히 도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명확한 기한과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언젠가는'이 아니라 '1년 후', '6개월 후'라는 구체적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 이런 데드라인이 명확하고 시간의 압박이 있어야 진짜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 가능성에 중독된 사람끼리는 서로의 현실 도피를 정당화해 주고, 서로의 핑계에 공감해 주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선 변화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변화하고 싶다면 바로 지금 자신의 환경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능성에 중독에 빠져있을 때, 포기는 실패가 아니다.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전략적 결정이며 끝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는 문으로 해석해야 한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분야에서 빨리 벗어날수록, 자신에게 정말 맞는 분야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포기를 하면서 생기는 시간에 새로운 걸 도전할 시간이 생기 때문에 기회비용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당신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그 소중한 시간을 가능성이라는 허상을 좇는 데 허비하지 말자. 가능성의 중독은 영화에서처럼 상처도 없고, 실패도 없고, 자존심이 다칠 일도 없는 매트릭스와 같다. 그렇지만 그 꿈속에 머물러 있는 한, 진짜 인생은 단 한 발짝도 시작되지 않는다. 매트릭스 밖의 진짜 인생은 불확실하고 때론 위험하며 실패할 수도 있고, 상처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위험을 감수해야만 진정한 성취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표면적으론 다양성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획일적인 성공 모델을 강요하고 있다.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성공이 있고, 다양한 종류의 행복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안정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모험을 좋아하며, 어떤 사람은 큰 조직에서 일하는 게 맞고, 어떤 사람은 혼자 일하는 게 맞다. 포기는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길은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당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가능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진짜 성장을 시작하는 것, 그게 가능성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진짜 가능성은 편안한 상상 속이 아니라, 불편한 현실과 부딪침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그 부딪침을 통해서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가능성의 중독에 빠져 있다면 이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자. 포기한다는 건 실패가 아니라 결국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건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이자,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적극적 선택이다. 데드라인을 설정하고, 자신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한 뒤 내리는 포기의 결정은 그 자체로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다.
지금 당신의 인생에서 붙잡고 있는 것 중에 놓아주어야 할 건 없는가? 도전해야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그리고 도전에는 늘 용기가 따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포기하는 것 역시 하나의 도전이다. 아니, 어쩌면 그거야말로 가장 용기 있는 도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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