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가 들려주지 않은 진짜 비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접했을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는 주인공 도로시 게일이 강렬한 토네이도에 휩쓸려 캔자스에 있는 집에서 낯선 오즈의 나라로 떨어지면서 시작된다. 낯선 땅에서 깨어난 도로시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란 벽돌 길을 따라 에메랄드 시티의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 나선다.
그 여정에서 도로시는 자신처럼 간절한 소원을 가진 세 명의 특별한 동료를 만나게 된다. 지혜를 상징하는 뇌가 없다고 믿는 허수아비는 더 똑똑해지고 싶어 하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심장이 없다고 여기는 양철 나무꾼은 따뜻한 감정을 갖고 싶어 한다. 마지막으로, 겁쟁이 사자는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용기를 얻고 싶어 한다. 이들 모두는 각자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도로시와 함께 에메랄드 시티로 향한다.
마침내 에메랄드 시티에 도착해 만난 위대한 마법사 오즈는 전능한 마법사가 아니라 평범한 노인에 불과했다. 오즈는 도로시 일행에게 마법의 힘으로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하자 도로시와 친구들은 그의 말에 실망한다. 다만 오즈는 이들에게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자질이 이미 가지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허수아비는 여정 속에서 닥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했고, 양철 나무꾼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사랑을 보여주었으며, 사자는 위험 속에서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용감히 나섰다. 도로시 역시 집으로 돌아갈 힘을 은색 구두에 이미 가지고 있었고, 결국 자신의 내면에 있던 믿음과 결단력으로 캔자스 집으로 돌아간다.
결국 이들은 위대한 마법의 도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 이미 존재했던 힘을 발견하고 각자의 소원을 이루게 된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핵심은 당신이 평생 찾아 헤매는 능력과 해답은 이미 당신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걸 확인하기 위해선 각자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여정이 있을 뿐이다. 변화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지닌 힘을 발견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당신이 지금 그토록 찾는 모든 답은 밖이 아니라 결국 당신 안에 있다.
마음가짐이 만드는 차이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은 인간의 자기 인식과 동기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의 믿음이 현실을 얼마나 강력하게 형성하는지 밝혀냈다. 그녀가 제시한 두 가지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바로 '고정형 마인드셋'과 '성장형 마인드셋'이다.
고정형 마인드셋은 능력이나 지능은 타고난 수준에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태도로 재능의 한계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다고 여기기 쉽다. 이에 따라 노력과 학습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실패를 자기 한계의 증거로 간주하여 도전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만 이미 습득한 지식과 기술의 범위 안에서 안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안정감은 동시에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패는 곧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므로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여, 안전한 길만 선택하려 한다. 성장형 마인드셋은 능력과 역량은 노력과 학습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이다.
성장형 마인드셋을 지닌 사람은 현재의 자신을 출발점으로 여기며, 도전을 배우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실패를 영구적 좌절이 아니라 배움의 기회로 해석하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한다. 긍정적인 자아 이미지와 자기 효능감이 뚜렷하고, 스스로 목표를 세우며 나아가는 힘도 강하다. 물론 모든 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가 때때로 과도한 자기 압박이나 좌절을 불러올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성장형 마인드셋은 학습과 성취, 그리고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유익하다.
이 두 가지 마음가짐 중 어느 쪽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지는 분명하다. 고정형 사고방식은 안전지대에 머무르게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인간의 잠재력은 그보다 훨씬 크다. "나는 원래 이 정도가 한계야"라는 믿음은 성장을 정지시키지만, "나는 노력하면 더 나아질 수 있어"라는 태도는 삶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킨다. 실패조차 자기 한계가 아니라 배움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용기도 얻게 된다.
캐럴 드웩의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소개한다. 학생들을 동일한 과제를 수행한 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똑똑하다"라며 능력을 칭찬받았고, 다른 그룹은 "열심히 했다"라며 노력을 칭찬받았다.
두 그룹 모두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지만, 칭찬의 내용은 달랐다. 이후 더 어려운 도전 과제를 제안했을 때, 노력을 칭찬받은 그룹의 90% 이상이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능력을 칭찬받은 그룹은 안전한 선택을 선호하며 도전을 꺼렸다. 최종 시험 결과, 노력 그룹은 성적이 향상됐지만, 능력 그룹은 오히려 성적이 하락했다. "똑똑하다"라는 칭찬을 받은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이 고정된 특성이라고 믿게 되어 실수를 저지르면 똑똑하다는 이미지가 손상될까 두려워했다.
이에 따라 그들은 더 이상 높은 성취를 추구하기보다 현재의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 반면, "노력했다"라는 칭찬을 받은 학생들은 자신의 행동과 과정이 인정받았다고 느꼈다. 이들은 실패를 한계가 아닌 배움의 기회로 받아들이며, 더 높은 성장을 목표로 도전했다. 결국, 단순한 칭찬의 차이가 학생들의 사고방식을 바꿨고,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실패를 자신의 한계로 여겼지만,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실패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사람의 마음은 관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성격은 변하지 않아"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격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역시 변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정형 마인드셋이다. 반면, 성격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노력과 배움을 통해 자신과 타인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바로 성장형 마인드셋이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결국 각자가 어떤 행동과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결정짓는다.
언어가 만드는 세계
"비 때문에 소풍이 망쳤다"와 "비 덕분에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의 두 문장은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두 문장임에도 글에서 만들어지는 감정과 에너지는 상반된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바로 우리가 선택하는 언어, 그중에서도 '때문에'와 '덕분에'라는 작은 표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때문에'라는 표현은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언어다. 이건 누군가를 탓하고,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다. 그 안엔 자연스레 원망이 스며들게 된다. 반면, '덕분에'라는 표현은 의미를 내부에서 찾는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에 말엔 존중과 감사가 깃든다. 조사 하나의 차이로 뜻이 전혀 달라지는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은 제거되는 게 아니라 다른 말로 대체될 뿐이다. 그림자가 싫다면 빛을 향해 돌아서면 된다. 중요한 건 모든 상황을 억지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다. 먼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뒤, 의식적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억지로 몰아내려 애쓰기보다는, 다르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사소한 언어의 전환은 곧 마음가짐의 전환이 되며, 결국 삶의 태도를 만든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실패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 과정에서 평소 습관처럼 사용하는 언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부정적인 언어는 고정형 사고를 강화하고, 긍정적인 언어는 사고를 유연하게 만든다.
언어 표현을 조금만 바꿔도 마음가짐은 달라진다. 실패를 "실패했다"라고 규정하면 모든 게 끝난 듯 느껴진다. 그렇지만 "배웠다"라고 표현하면 같은 경험이 성장의 발판이 된다. 심리학 연구에서도 실패를 통제할 수 있는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이후의 도전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실패는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낙인이 아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 중 한 과정일 뿐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2013년 하버드 졸업식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실패에서는 배우세요. 실패는 단지 인생이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경험, 만남, 그리고 특히 여러분의 실패는 여러분을 가르치고 더 나은 나 자신으로 강요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유리구두는 이미 신고 있다
심리학자 기어(Gear)와 마이셀(Maisel)은 통제감이 스트레스 감소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대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끔찍한 교통사고 사진을 보여주며, 한 그룹엔 원하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고 말하고, 다른 그룹엔 선택권이 없다고 알렸다. 그 결과, 두 그룹 모두 동일한 시간 동안 사진을 보았지만, 통제권이 있다고 믿는 참가자들은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 스트레스가 현저히 감소했다. 이 실험은 인간에게 상황에 대한 통제력이 있다는 신념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통제감의 중요성은 일상적 경험뿐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이야기에서도 관찰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전통적인 동화 속 주인공들은 대체로 통제력을 행사하기보다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며, 외부의 구원자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신데렐라는 계모와 언니들의 괴롭힘을 참고 견디며, 요정이 만들어준 유리구두를 잃어버리고 왕자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백설 공주는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잠들어 왕자의 키스를 기다리고,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잃고서도 왕자가 자신을 알아보고, 사랑해 주기를 기다리며 희생적인 선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런 이야기들은 은연중에 "누군가가 나를 구해줄 것이다", "기다리면 해결될 것이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라는 수동적 사고를 심어준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면, 이 이야기들을 이전과는 다르게 다시 써야 한다.
새로운 이야기 속 신데렐라는 계모와 언니들의 괴롭힘을 참아내는 대신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무도회가 끝난 뒤 잃어버린 유리구두를 왕자가 찾아 헤매도록 두는 게 아니라, 그녀 스스로 성으로 찾아가 반대쪽 구두를 보여주며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리구두를 기반으로 셀럽이자 사업가가 되어 스스로 성공을 이룬 뒤 왕자에게 먼저 다가가 사랑을 고백할 수도 있다.
백설 공주 역시 더 이상 잠들어 있는 희생자가 아니다. 그녀는 계모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숲속의 친구들과 힘을 모아 진실을 알리고 왕비의 위선을 폭로한다. 더 나아가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 군대를 조직해 성으로 돌아가 왕좌를 되찾는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단순히 사랑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지도자로 거듭난다. 더 이상 왕자의 키스가 필요하지 않다. 그녀는 이제 구해져야 할 공주가 아니라 자신의 왕국을 구하는 여왕이 됐기 때문이다.
인어공주 역시 목소리를 잃고 침묵 속에서 사랑을 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무기로 삼아, 바다에서 왕자를 구한 게 자신임을 당당히 밝히며 왕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그녀는 더 이상 희생적인 사랑의 상징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을 통해 사랑을 끌어내는 주인공이 된다.
기어와 마이셀의 실험에서 보듯, 외부 상황이나 타인의 결정에 휘둘리는 대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통제권을 느낄 때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통제권을 갖는다는 건 모든 걸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 내가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통제권이다.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는 외부의 마법사가 아닌 자신의 용기와 지혜로 목표를 이룬다.
외부의 구원이나 운명적 만남을 기다리는 대신, 자신이 삶을 선택하고 통제할 때 비로소 본인만의 에메랄드 시티를 찾아갈 수 있다. 각자가 향해야 할 에메랄드 시티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걸 찾아가는 힘은 언제나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한다.
이제 당신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서 있다. 완벽한 것이 찾아오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불완전한 현실에서 능동적으로 길을 만들어갈 것인가? 기다리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당신도 도로시처럼 자신만의 여정을 통해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은 내가 원하던 용기도, 사랑도, 지혜도 이미 당신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유리구두를 잃어버렸다고 절망하지 말자. 왕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도 말자. 이제는 당신이 먼저 성문을 두드려 보자.
삶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니까 말이다. 당신이 찾는 유리구두는 이미 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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