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패트릭 브링리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라임웨일 2025. 9. 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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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로서 화려한 신입 기자 생활을 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던 저자는 사랑하는 형 톰의 갑작스러운 암 진단과 함께 송두리째 흔들린다. "원래라면 내 결혼식이 열렸을 날 형의 장례식이 거행됐다"라는 충격적이면서도 강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운명의 잔혹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저자는 형을 잃은 상실의 고통 속에서 슬픔에 화려한 직장을 떠나 도피하듯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경비원이 된 한 남자의 10년간의 여정을 그린 회고록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라는 그의 말은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낸다. 이는 도피가 아니라 삶의 속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멈춰 서는 것을 실패로, 느린 것을 뒤처짐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형의 병실에서 보낸 시간들이 나중에 미술관의 고요한 전시실과 묘하게 겹쳐진다는 그의 회상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죽음을 앞둔 형과의 마지막 순간들이 어떻게 그를 예술 앞에서의 명상적 시간으로 이끌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겉으로는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는 경비원 일을 하며 미술관 한구석에 서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작품들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 예술과 조우하며 그는 천천히 자신의 상처와 마주한다.

패트릭 브링리가 처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지하 창고에서 빈 나무 상자들 사이에 서 있던 순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경험 많은 선배 경비원 아다(Aada)의 안내를 받으며 그가 배운 것은 "가만히 서서, 작품을 지키는 것"뿐인 단순함 이었다.

하지만 이 단순한 행위는 그에게 세상의 모든 소음과 복잡한 관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보호막이 되었다. 미술관의 푸른 유니폼을 입은 순간, 그는 더 이상 뉴요커의 패트릭이 아닌, 수많은 경비원 중 한 명의 익명의 존재가 되었고, 이 익명성은 그에게 슬픔에 잠길 완전한 자유를 선물해 주었다.

패트릭 브링리는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들이 쌓이면서 "예술 작품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한다."라는 깊은 깨달음을 얻고 예술의 힘이 복잡한 해석이나 지식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브뤼헐의 '수확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뜨거운 태양 아래 밀을 베는 농부들의 고단함,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앉아 빵을 먹는 소박한 기쁨, 지쳐서 대자로 뻗어 잠든 모습에서 그는 화려함 없는 보통의 삶이 가진 신성함을 느끼게 되고, 모네의 그림을 바라보며 "산들바람이 중요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중요해진다. 아이가 옹알거리는 소리가 중요해지고, 그렇게 그 순간에 완전함, 심지어 거룩함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라는 그의 말처럼 예술이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의 감정에 경험을 전달하는 놀라운 힘을 글로 서술한다.

정규직원이 된 후 패트릭 브링리가 배치받은 곳은 고대 이집트관이었다. 형의 죽음을 막 경험한 그에게 5천 년 전 죽음을 대비한 고대인들의 흔적들이 펼쳐진 것은 운명적이었다.

거대한 덴두르 신전 앞에 서면서 그는 "억겁의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며 로마 황제가 세운 이 신전이 나일강에 수몰될 위기에서 구출되어 머나먼 뉴욕까지 오게 된 역사를 되새긴다. 그리고 한 인간의 슬픔이 얼마나 찰나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패트릭 브링리는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라는 것을 예술 작품들을 통해 배워간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고요함과 아름다움 속에서, 저자는 상실의 아픔을 딛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자신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린다. 그 과정이 결코 극적이지 않다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조용하고 느리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게 느껴지게 된다.

특히 미술관의 예술품만이 아닌 관람객들의 다양한 반응, 동료 경비원들의 삶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패트릭 브링리의 동료 경비원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책에선 미술관 경비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는데 그 내용은 미술관 경비원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출발하는 특별한 부류는 존재하지 않지만, 수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고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모두 각자의 삶에서 원하는 목표를 이룬 사람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런 목표에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은 이미 그러서도 충분히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패트릭 브링리는 동료 경비원들과 함께 순찰을 하고,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늘따라 관람객이 많군" 같은 무심한 대화들을 통해 안정감과 삶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 주었고 특히 수십 년간 미술관을 지켜온 한 노년 경비원이 그에게 "이곳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네."라고 건넨 한마디는 그가 조급함을 버리고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메트로폴리탄에는 연간 거의 7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는데 패트릭 브링리는 이 수많은 관람객들을 관찰하며 인간 군상의 파노라마를 보았다.

작품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 아이에게 그림을 설명해 주는 다정한 부모, 지루해하며 몸을 배배 꼬는 아이들, 작품 앞에서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사람까지... 그는 이 모든 모습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감정과 삶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특히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와 특정 작품 앞에 한참을 서 있다 가는 노부부를 보며, 그는 예술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삶의 일부가 되는지를 목격했다.

어느 날 한 관람객이 그에게 다가와 "당신은 매일 이걸 볼 수 있어서 정말 좋겠어요"라고 말했을 때, 그는 자신이 슬픔을 피해 도망 온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패트릭 브링리는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라고 말하며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우리는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가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삶이자 예술이라는 것이다.

패트릭 브링리는 특히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아내 조지아 오키프를 찍은 사진들을 보며 "때로는 멈춰 서서 무언가를 흠모할 명분이 필요하고, 예술 작품이 그런 허락을 준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아름다운 것을 응시할 시간을 허락하고 있는가?라는 스스로 되돌아볼 질문을 던지게 된다.

책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피카소 특별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수많은 관람객들로 붐비는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비틀거리며 쓰러지면서 피카소의 장미 시대 그림에 15cm 흠집을 낸 것이다. 이 사건은 패트릭 브링리에게 예술의 취약성과 동시에 그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수백 년, 수천 년을 견뎌온 작품들이 한순간의 부주의로 영원히 손상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바로 자신들의 역할이라는 책임감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이런 사고들이 예술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이중성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작품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고, 때로는 만지려 하는 이유는 예술이 가진 강력한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패트릭 브링리는 고대 이집트관에서 그리스 로마관으로, 아시아 미술관에서 유럽 회화관으로, 현대 미술관에서 미국 윙으로 이동하며 인류 문명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했다.

아시아 미술관의 불상들 앞에서 불상들의 고요하고 자비로운 미소 앞에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평온함을 배웠다. 화려한 서양 미술과는 다른, 비움과 명상의 미학 속에서 그는 자신의 슬픔을 채우기보다 비워내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룸에서는 예술이 회화나 조각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공간'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체감했다. 모든 가구와 창문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 방 안에서 그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내면과 달리 질서 잡힌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안정감을 찾았다.

"인생은 길다. 그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다."라고 말하는 그는 "때로는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들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라고 말하며 삶의 고요한 시간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하지만 동시에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인다. 멈춤과 움직임, 고요함과 역동성이 모두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패트릭 브링리는 더 이상 슬픔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대신 슬픔을 자신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은 그의 슬픔을 완전히 지워주지는 않았지만, 그 슬픔을 품고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선물했다.

그리고 아이의 탄생이 그에게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이제 과거의 유물과 박제된 아름다움이 아닌, 살아 숨 쉬는 현재와 미래를 돌봐야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미술관에서의 시간은 충분했고, 이제는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가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그의 퇴사는 슬픔으로부터의 완치나 탈출이 아니었다. 오히려 10년간의 애도와 성찰 과정을 무사히 마친 자의 졸업에 가까웠다. 그는 미술관에 자신의 가장 아픈 시절을 위탁했고, 미술관은 그에게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선물하며 그를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등을 떠밀어주었다.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패트릭 브링리가 10년간의 멈춤을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다.

이는 체념이나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삶이 가진 끊임없는 생명력에 대한 인정의 표현이다.

고요 속에서 그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법을 익혔다. 경비원으로서의 10년이 단순한 도피나 은둔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었다.

"슬픔 때문에 세상의 리듬에서 벗어나 메트로폴리탄에 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술관 동료들과 어울리며 다시 세상의 리듬에 맞추게 되었다"라는 그는 고백한다.

현재 패트릭 브링리는 브루클린에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살며, 때때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가이드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약 2시간가량 진행되는 이 투어에서 그는 여전히 "그냥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소개할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투어에 참여한 기자는 패트릭 브링리 덕분에 "경비원부터 청소부, 미술관 내 서점 직원까지 무심코 스쳐 지나쳤을 법한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눴다"라고 전한다. 벽에 새까만 부분인 '가드마크'(경비원 흔적)를 가리키며 "경비원들이 늘 여기에 기대어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생긴 자국"이라고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10년간의 경험이 어떻게 특별한 시선을 만들어냈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미술관에 가고 싶어진다. 작품을 감상뿐만 아니라 미술관의 그림자 속에 서 있던 경비원,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다른 관람객 또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재미가 되지 않을까?

"예술을 공부하려 하지 말고 예술 안에서 배우라(Don't learn about art, learn from it)".

미술관에 가면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미술관에 와서는 자신을 풀어놓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는 그의 말은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복잡한 지식이나 해석에 얽매이지 말고, 작품 앞에서 느끼는 순수한 감정과 직관을 믿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순간들, 고통스러운 순간들,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을 미술관의 작품을 대하듯 경외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미술관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것, 배우는 것,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어 세상으로 돌아가되, 당신의 마음에 쉽게 맞지 않는 무언가, 앞으로 나아가며 당신을 짓누르고 조금씩 변화시키는 무언가를 가지고 나가라"는 그의 조언은 이 책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마지막 선물이다.

결국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잊고 있었던 삶의 의미를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깨달음 앞에서 우리는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삶을 살면서 우리도 역시 상실 앞에서, 혼란 앞에서, 무기력함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야 할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 때 패트릭 브링리의 이야기는 그 멈춤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삶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멈춤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통해 다시 새로운 여정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안내한다.

삶 속에서 멈춤이 필요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멈춰 서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다시 바라보는 용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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