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 김지윤

라임웨일 2025. 9. 3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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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은 책 제목처럼 마음을, 먼지를 털어내고 뽀송뽀송하게 만드는 책인 거 같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위로해 주며 살면서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연남동 골목 한편에 자리한 24시간 무인 빨래방이라는,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평범한 공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처음 동화를 읽어주는 설렘처럼 한 장 한 장이 두근거리고 다음 장이 기대되게 한다. 특히 김지윤 작가가 오랫동안 연남동에 거주하며 동네의 변화를 지켜본 경험이 이 소설에 생생한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연트럴파크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연남동을 지켜본 작가의 시선에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는 사람들과 변화하는 동네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빨래방 탁자 위에 놓인 연두색 다이어리에 사람들이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자신의 고민과 마음속 이야기를 적어두면, 다른 누군가가 그 아래에 진심 어린 위로와 응답을 남긴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 오직 글로만 나누는 소통이지만, 그 안에는 진실하고 따뜻한 마음이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담겨 있다.

작가는 각기 다른 처지인 사람들이 등장시키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아내를 잃고 진돗개 진돌이와 함께 외롭게 사는 장 영감, 산후우울증과 육아 스트레스로 힘겨워하는 미라, 관객 없는 버스킹에 지친 청년 하준, 만년 보조 작가로 꿈을 키우는 여름, 데이트 폭력의 상처를 안고 사는 연우, 보이스 피싱으로 동생을 잃은 재열, 그리고 아들과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기러기 아빠 대주까지. 각자 다른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 빨래방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만나며 서로의 위로가 되어간다.

첫 번째 이야기: "토마토 화분을 두드려 보세요"

첫 번째 이야기는 이 책의 전체적인 색깔을 가장 잘 보여준다. 우리 삶에서도 우연처럼 다가온 인연이 커다란 삶의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장 영감과 미라의 만남은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만남이었다.

집 문제와 아버지까지 병에 걸려 경제적으로 막막한 미라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뾰족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고 발버둥 칠수록 무언가 자꾸 어긋나는 것 같은 현실에서 집에 세탁기마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아 집주인에게 고쳐 달라고 말하려 했지만 정작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세탁기 이야기는 목구멍 속으로 다시 삼켜버리는 미라였다.

그런 미라가 유일하게 현실에서 잠시 도망치는 곳은 고장 난 세탁기로 인해 찾게 된 '빙굴빙굴 빨래방'이었다. 미라는 빨래방에 놓여있는 연두색 다이어리에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런 미라의 글을 우연히 본 장 영감은 "화분 기르기를 권합니다. 직접 흙도 만지고 햇볕도 쬐어주고 물도 주고 가끔 통풍도 시켜주며 스스로도 바람을 쐬어보세요. 내가 화분을 기르는지, 이 조그마한 식물이 나를 가꾸는지 모를 만큼 기분이 훨씬 나아질 겁니다"라고 조언한다.

이후 다시 빨래방에서 우연히 만난 장 영감과 미라의 만남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만남이었다. 더욱이 요즘은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시대가 변하면서 젊은 고독사도 늘어가는 추세인데 이야기의 후반에서 혼자 집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장 영감을 미라 가족이 발견해 구해낸 장면 이후 장 영감이 자신의 집 2층을 미라 가족에게 내어주는 모습은 진정한 이웃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각자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가는 아름다운 과정을 그려낸다.

두 번째 이야기: "한여름의 연애"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보조 작가 여름과 버스킹하는 청년 하준의 이야기다. 여름은 공모전마다 당선에 떨어지고, 하준은 버스킹을 봐주는 관객이 없어 각자의 삶에 지쳐있을 때 연두색 다이어리를 통해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SNS가 발달해서 쉽게 연락하고 쉽게 판단하는 요즘 연예에서 다이어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꿈을 이해하고 응원하며,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청춘의 모습이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다.

세 번째 이야기: "우산"

미대생인 연우는 남자 친구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한 상처를 안고 있다. 남자 친구가 단톡방에서 둘만의 사적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보고 헤어지게 된 연우는, 자신이 몰래 핸드폰을 본 것에 자책하며 휴학까지 하게 된다.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빨래방의 연두색 다이어리에 적게 되는데, 늘 자책하고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던 연우에게 사람들은 진심 어린 말을 건네고 그 말에서 연우는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연우가 우연히 기르기 시작한 길고양이를 통해 우리가 키우는 반려동물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알려주고 동물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무조건적 사랑과 위로를 주며 반려동물은 인간의 유흥을 위한 애완동물이 아닌 평생 함께하며 위로받고 서로의 친구가 되어 주는 반려동물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네 번째 이야기: "분실물 보관함"

경찰 공무원을 꿈꾸던 재열의 동생 우열이 보이스 피싱을 당해 200만 원을 잃게 되었다. 그에게 200만 원은 공부하면서 자신이 아낄 수 있는 책, 먹을 것 등을 먹지 않고 조금씩 모은 전 재산이었다. 그래서 우열에게 200만 원은 자신의 곧 자기 자신이었다. 그런 소중한 돈을 보이스 피싱을 당하자, 그는 안 좋은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의 눈앞에서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재열은 동생을 죽음으로 내몬 범인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빙글빙글 빨래방의 상징과도 같은 연두색 다이어리는 사실 재열의 동생 우열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다이어리에 그려져 있던 인물에 관한 이야기와 그간의 상황을 재열은 빨래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공유한다. 재열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와 함께 보이스피싱범을 잡기로 하고 우열을 죽음으로 내몬 보이스피싱범을 추적한다.

이전의 달콤하고 코끝이 짠한 이야기와는 다르게 이번 에피소드는 긴장감 속에서 집중하며 몰입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다. 결국 돈도 찾고 범인도 잡게 되어 안도감을 주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다섯 번째 이야기: "대추 쌍화탕"

장 영감의 아들이자 성형외과 의사인 대주의 이야기다.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아들을 유학 보내기 위해 타 병원에서 대진을 하다가 발각되어 감봉당하고, 집 보일러까지 고장 나 장 영감 집에서 살게 되면서 부자간의 갈등이 일어난다. 대주는 아버지가 적은 편지를 보며 무뚝뚝한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었고, 그래서 서로 오해가 생겨 미워하게 된 것임을 깨닫는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뮤지컬로까지 제작된 이유는 바쁜 일상에 쫓겨 서로에게 무관심해진 현대인들에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빨래방의 다이어리처럼, 때로는 가까운 사람보다 낯선 이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더 편할 때가 있고, 그런 소소한 위로가 누군가의 하루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포근한 이불처럼 따듯한 이 이야기는 미라를 향한 장 영감의 위로는 미라에게서 다시 연우에게, 여름은 하준에게, 하준은 다시 여름에게로 전달된다.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대주는 아버지가 쓴 빨래방 다이어리 속 이야기를 보고 다시 아버지에게 다가갈 용기를 낸다. 서로가 진심을 담아 보낸 마음은 동그란 파동이 되어 멀리 퍼져 간다

살면서 누구나 힘들었던 순간이 있지만, 지금까지 잘 버틴 이유는 행복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큰바람이든 작은 바람이든 어차피 버티면 지나갈 바람일 뿐이니까요"라는 할아버지의 위로처럼, 우리 모두도 바람을 이겨낼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마음을 꺼내 보이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주 큰 행운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된다. 과연 우리는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내 주변의 힘든 사람들을 알아차리고 있는가? 그리고 내 마음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가? 다이어리가 등장인물들에 마음을 꺼내 보이는 매개체였던 것처럼, 이 책은 독자들에게도 그런 역할을 한다.

책을 덮고 나면 마음이 포근포근해진다. 마치 깨끗이 빨아서 햇볕에 말린 이불 같은 따뜻함과 포슬포슬함이 남는다.

"넌 필 거야. 네 계절에. 넌 분명 꽃이거든"이라는 메시지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계절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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